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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조금 모자란 가봐. 그게 아닌데, 진짜 그게 아닌데.... 그렇게 되어 버렸다. http://cafe.naver.com/jnovel21/12479
티어리스 연금술사 레이마그너스는 그의 단 하나뿐인 제자 티어리스에게 ‘눈물 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눈물 잔’은 눈물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의 잔이었다. “울지 못하는 나의 제자야, 너 만이 이 잔을 소유할 수 있다. 오직 너의 눈물만이 이 잔 안에서 황금으로 변화될 것이니…….” 레이마그너스는 티어리스의 손을 꼭 붙잡고, 마지막말을 끝내 다하지 못한 채로 눈을 감고 말았다. 티어리스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아이러니에 빠졌다. 무슨 이유인지 티어리스는 그의 이름처럼, 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울 수 있을까?” 티어리스는 울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를 위해, 황금을 얻고 싶었다. 티어리스의 엄마는 남편과 일찍 사별했고, 가난했고, 황금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티어리스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울 수 있을까요?” “왜? 왜 억지로 울려고 하느냐? 살다보면 울 일이 얼마나 많은데.” “레이마그너스가 이것을 저에게 주며 말했어요. 이 잔은 마법의 잔으로, 눈물을 떨어뜨리면 황금으로 변한다고요. 전 엄마를 위해서 황금을 만들어 보이고 싶어요.” “그러니?” 엄마는 즉시 양파를 까라고 말했다. “아주 맵거든.” 티어리스는 엄마와 함께 양파를 깠다. 엄마는 눈물과 콧물을 철철 흘렸지만, 티어리스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넌 태어났을 때도 울지 않았다. 애야, 잔을 이리 줘봐라.” 엄마는 ‘눈물 잔’에 자신의 눈물을 떨어트렸다. 그러나 황금은 생겨나지 않았다. “오직 제 눈물만이 황금으로 변화된다고 했어요.” 티어리스가 말했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야, 그놈은 사기꾼이란다. 허구한 날, 어린 너를 부려먹을 때부터 알아봤단다.” 엄마는 ‘눈물 잔’을 창밖에 던져버리며 소리쳤다. “못된 놈, 죽으면서까지 어린 아이에게 사기를 치다니!” 티어리스는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라고 말하며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가 두 손을 감싸 잡으며 말했다. “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엄마는 너만 있으면 된단다. 네가 있어 충분히 기쁘고,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황금 따위 필요 없다.” 엄마는 티어리스를 꼭 안아주었다. 티어리스는 엄마의 가슴에 묻혀 너무도 행복했다. “엄마는 시장에 좀 다녀오마. 저녁거리 좀 사와야겠구나. 우리 아들, 뭐가 먹고 싶니?” “케밥이요!” 티어리스는 소리쳤다. “좋았어. 오늘 저녁요리는 케밥이다.” 엄마가 밖에 나가자, 티어리스는 재빨리 화단에서 ‘눈물 잔’을 주워들고 양치기소년을 찾아갔다. 양치기소년은 평소 책을 많이 읽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어떻게 하면 울 수 있을까요?” 티어리스는 양치기소년에게 물었다. 사연을 들은 양치기소년은 음, 하더니 책을 덮으며 말했다. “내가 안달루시아산맥에서 산적들에게 붙잡혀 가진 것을 몽땅 잃었는데, 그 중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책을 빼앗겼을 때 눈물이 나왔어. 그 책은 집안 대대로 물려 내려온 코란의 말씀이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진귀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었거든. 너무 슬퍼서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솟아 나왔어.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야? 그것을 잃게 되면 눈물이 저절로 나올 거야.” 티어리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엄마였다. “난 엄마가 가장 소중해요.” “그래? 그럼, 네 엄마를 잃게 되면 눈물이 나올 거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잔은 엉터리야. 어제 내가 마을 사람들을 놀리기 위해 ‘늑대다! 늑대가 나왔다!’ 라고 막 소리쳤던 것처럼 말이야.” 하하하하, 양치기소년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는 요즘 마을 사람들을 놀려먹는 것이 꽤 즐거웠다. “코란의 말씀에 거짓말하는 자보다 사악한자는 없다고 했어요!” 티어리스가 소리쳤다. “뭐, 어때 장난인걸. 하긴, 나도 산적들에게 책을 빼앗긴 뒤로 변한 거라고. 사람은 누구나 다 변하는 거야. 어? 저 녀석 봐라.” 양치기소년은 -말하다말고- 무리를 이탈한 어린양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달려갔다. 어린양을 붙잡아 품에 안고 깔깔깔! 거리며 초원 위를 뒹굴고 있었다. 티어리스는 돌아섰다. 그를 통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티어리스는 양치기소년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한참을 내려오는 데, 양치기소년이 “늑대야!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포도밭에서 포도를 수확하다가 말고, -괭이와 삽자루를 쥐고서- 양치기소년을 구하기 위해 초원을 내달리고 있었다. 티어리스는 하루라도 빨리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울 수 있을까? 난 울지 못해. 양치기소년의 말처럼, 엄마를 잃게 되면 슬퍼서 눈물이 나올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티어리스는 답답한 마음에 거리를 걸었다. 상점이 늘어선 거리를 걷다가, 구둣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구둣가게주인 빅터는 나이 40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았는데, 엄마와 매우 친했다. 티어리스는 빅터에게 물었다. “빅터아저씨, 어떻게 하면 울 수 있을까요? 난 울지 못해요.” 빅터는 진열된 구두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손님은 없었다. “울고 싶어?” “네.” “한 대 때려줄까? 이 주먹으로 꿀밤을 맞으면 꽤 아파서 눈물이 팽 돌걸.” 빅터는 정말 때리고 싶었다. “좋아요. 때려주세요.” 티어리스는 눈을 질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주먹은 무시무시했다. 시커먼 털이 머리카락처럼 자라나 있었고, 팔뚝에는 헤나문신이 불꽃처럼 새겨져 있었다. 티어리스는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머리와 목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러나 주먹은 날아오지 않고 빅터의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하하하하! 왜 억지로 울고 싶은데? 한 번 들어보자꾸나.” 티어리스는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빅터는 쪼그려 앉으며,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눈물이 필요하거든요.” “왜 눈물이 필요할까?” 빅터는 다 알면서도 시침을 딱 떼고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티어리스는 ‘눈물 잔’을 품에서 꺼내 보여주며 사연을 설명해주었다. “이 잔은 스승님께서 물려주신 마법의 잔으로, 제 눈물을 떨어뜨리면 황금으로 변하거든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물은 안돼요.” “오, 정말?” “네.” 빅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현듯 물었다. “잠깐, 너 눈물을 원하는 거냐? 황금을 원하는 거냐?” 티어리스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난 눈물을 원하는 것일까? 황금을 원하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제가 원하는 것은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에요!” 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빅터는 혀를 끌끌 차며 몸을 일으켰다. “애야, 잘 들어라. 난 이 구둣가게를 얻기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을 했단다. 어디보자, 네가 올해 몇 살이더라?” “열한 살 이요.” “그래, 맞아. 꼭 너만 했을 때였어. 똥을 퍼서 밭에 날랐고, 대장간에서 뜨거운 쇠를 옮겼어. 정말 힘들었지. 주인에게 얻어맞았어. 눈물과 땀을, 네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흘렸단다. 이 상처는 그 때 생긴 거야.” 빅터는 오른손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팔꿈치에서부터 어깨까지 이어진 -화상을 입은 끔찍한- 상처를 보여주었다. “쇳덩어리를 지게에 짊어지고 옮길 때 넘어졌지.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 이 팔을 기대지 않았더라면 난 온 몸이 타들어가 죽었을 거다. 덕분에 이 영광의 상처가 생겼지만 말이야.” 티어리스는 상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앗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혐오스러운 상처였다. “애야, 황금은 그 잔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네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단다. 또 황금이 아니라 해도 네 엄마는 네가 있어 충분히 기쁠 것이다.”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전 하루라도 빨리 황금을 얻어,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요. 전 울기만 하면 황금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걸요?” 티어리스는 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눈물 잔’이 자랑스러웠다. 빅터는 ‘눈물 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전혀 믿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좋다. 어떻게 울 텐데? 넌 울지 못한다며.” 빅터가 묻자, 티어리스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네가 원하는 것은 황금이 아니라 눈물인 것 같구나. 정 울고 싶다면 네 엄마를 죽이렴.” 빅터는 먼지떨이를 목에 가져가 슥 그으며 말했다. 그의 눈은 뒤집어져 흰자위만 보였고, 혀는 턱까지 빠져나왔다. 티어리스는 그 뒤집어진 눈과 새빨간 혀가 무서웠다. “할 수 있겠냐? 나도 엄마를 잃었을 때 엄청나게 울었다. 아마 그 때 흘린 눈물이 황금으로 변했다면 여기 가게 안을 다 채우고도 남았을 걸.” “모, 못해요. 전 엄마를 위해서 황금이 필요한 걸요?” “그래? 그렇다면 그 ‘눈물 잔’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이로구나.” 티어리스는 ‘눈물 잔’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보아도 쓰레기는 아닌데, 모두 다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먼지를 털어야하니, 비켜줄렴?” “네…….” 티어리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구둣가게주인 빅터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정 울고 싶다면 네 엄마를 죽이렴. 할 수 있겠냐?’ 티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눈물 잔’을 가슴 앞에 쥐고,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티어리스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엄마!” 티어리스는 문을 열고 소리쳤다. 그러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엄마?” 벽난로의 불이 꺼져 있었다.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밖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티어리스는 등잔에 불을 밝히지 않았다. 그대로 어둠을 맞이했다. 텅 빈 집안에서, 엄마가 죽고 없다는 -홀로 남겨졌다는- 상상을 하니 정말 슬퍼졌다.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다. 티어리스는 ‘눈물 잔’을 눈 밑에 받쳤다. 하지만 눈물은 단 한 방울도 얻을 수가 없었다. 티어리스는 눈물을 얻고 싶었다. 순간, 엄마가 너무 미워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먹기 싫은 생선을 억지로 먹이면서 안 먹는다고 화내고 소리칠 때가 그랬다. 또 사촌동생 렉스녀석이 집에 와서 자신의 장난감을 마음대로 만질 때 그것을 못 만지게 하면, 속 좁은 녀석이라고 혼낼 때가 그랬다. “넌, 네 거니까 언제든지 만질 수 있잖아! 동생이 좀 만지는 게 그렇게 싫어?” 티어리스가 가장 아끼는 사마귀나무조립품은 함부로 만지면 부속품이 부러지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에, 다른 누군가가 만지는 것이 정말(끔찍하게도)싫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무조건 나무라기만 했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미웠다. 화가 나서 엄마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티어리스는 ‘눈물 잔’을 손에 꼭 쥐었다. 이곳에 눈물을 떨어뜨려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티어리스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선반의 가장 높은 곳에 올려 둔 쥐약을 꺼냈다. 쥐약을 먹은 동네 개 한 마리가 미친 듯이 거리를 뛰어다니다가 끝내는 개울가에서 거품을 입에 물고 피를 토해 죽었던 모습을 기억해냈다. 티어리스는 쥐약을 스푼에 짠 뒤, 물에 섞었다. 쥐약 먹으면 죽는다. 언젠가 엄마는 식빵부스러기에 쥐약을 발라 덫을 놓으며 당부의 당부를 거듭했었다. 가까이 가지도 마라. 쥐약 먹으면 죽는다. “알았어요, 엄마.” 티어리스는 혼자 중얼거리며 스푼을 이용해 컵 안의 물을 저었다. 티어리스가 양치기소년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반찬거리를 사러가던 티어리스의 엄마는 구둣가게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가게주인 빅터는 유리창너머로 그녀가 보이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 옛말에 처녀는 건드려도, 과부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구나. 손님도 없는데, 에이 재수 없어.” 한탄을 하는 그 때, 그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빅터, 빅터.”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그의 이름부터 불렀다.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왜?” 빅터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녀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황금을 얻을 수 있어.” 빅터는 황금이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재빨리 돌아섰다. “뭐?” 그녀는 빅터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빅터는 귀가 간지러웠다. 간지러운 만큼 달콤한 말이었다. “우린 곧 부자가 될 거야. 그 노인네가 마법의 잔을 내 아들에게 넘겨주었어.” “뭘 넘겨주었다는 거야? 노인네라니?” “연금술사 레이마그너스 말이야.” “무슨 말이야. 자세히 말해봐.” “오, 빅터. 키스해줘. 먼저 키스해줘.” 빅터는 화가 나서, 그녀의 가슴을 밀치며 소리쳤다. “자세히 말해보라니까!” 그녀는 빅터의 우악스러운 힘에 밀려나가 진열된 구두를 무너뜨리며 넘어졌다. 그녀는 비참했다. 지금 눈앞의 남자에게 버림 받을 까봐, 언제나 불안했다. 그녀는 울지 않기 위해 애썼다.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마법의 잔은 눈물을 황금으로 변화시켜.” “뭐? 푸하하하하하!” 빅터는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목젖을 드러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아, 이거 눈물이 다 나오는 군. 그래서 눈물을 떨어트려 봤어? 정말 황금으로 변했어?” 빅터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모를 0.1퍼센트의 가능성까지 배제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 빅터! 내 아들은 울지 못해. 태어났을 때도 울지 않았어. 지금까지도 계속.” “무슨 소리야? 네 눈물을 떨어뜨리면 되잖아!” “내 눈물은 소용없었어. 그 노인네가 주문을 걸어두었나 봐. 오직 내 아들의 눈물만이 그 잔 안에서 황금으로 변한데.” “말도 안 돼.” “아냐, 정말이야. 오, 빅터. 내 눈을 봐. 난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어.” “진실? 이게 진실이야? 진실이란 길가에 설치된 외줄과도 같은 것이지. 그것은 올라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야. 그 ‘눈물 잔’ 이라는 마법의 잔이 바로 외줄인 셈이군. 날 걸려 넘어뜨릴 속셈이야?” “오, 빅터. 아무도 걸려 넘어지지 않아. 내 아들을 울게만 하면 돼. 그럼 우린 부자가 되는 거라고.” 그녀는 아들이 울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주장을 계속 내세울 수 있었다. 그녀역시 마법의 잔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빅터를 붙잡아둘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티어리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앞으로도 울지 않을 테니까. “좋아. 네 아들을 억지로라도 울리는 거야. 어때? 그래서 황금이 안 나오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어떻게? 방법을 알려줘.” 빅터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몽둥이로 개를 패듯 패보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아니면 다리를 부러뜨려 보거나. “오, 빅터. 사랑해.” 그녀는 빅터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애정을 구걸하고 있었다. 빅터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정말 황금으로 변할까? 그래, 모를 일이지 연금술사가 남긴 것이니까. -헌데, 왜 하필 녀석은 울지 못하는 거야. 어떻게 하면 어린 녀석을 울릴 수 있을까? -아냐, 아냐. 이건 모순이야. 난 이 교활한 여자에게 속고 있는 거라고. -아니지. 밑져야 본전이잖아. 진짜 황금으로 변할 수도 있는 거야. -좋아, 일단 애를 울리고 보는 거야. 그래서 만약 황금을 얻으면… 만약에 황금을 얻으면, 이 거머리 같은 여자는 또 어떻게 떼어내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빅터는 머리가 복잡해 터질 것만 같았다. “빅터, 밤에 찾아와 줘. 이 일에 대해 만나서 더 의논했으면 해.”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봐.” 빅터는 가장 슬펐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그의 엄마가 죽었을 때였다. “어렸을 때 엄마를 병으로 잃었지. 그 때 너무 슬퍼서 눈물이 계속 쏟아졌어. 그래! 이렇게 하면 어떨까?” 빅터는 갑자기 박수를 치며 말했다. “어때? 네가 죽은 척 하는 건?”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와의 지속적인 만남과 육체의 관계를 통해 나누는 뜨거운 사랑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죽은 척해서 네 아들을 울리고, 네 아들이 울면 그 눈물로 황금을 얻어내는 거야.” 그녀는 억지로 웃었다. 빅터가 보기에 그 웃음은 활짝 웃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굉장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었다. “좋아? 좋은 거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하지 않는 거야? 만약 황금이 나오지 않으면 넌 내손에 죽는 거야. 대신, 황금이 나오면 우리 멀리 도망가서 살자. 물론 네 아들은 집에 남겨두는 거야. 난 애는 질색이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지만, 그녀는 아들을 버릴 수가 없다고 소리쳤다. “우리는 황금을 계속 얻어내야 하잖아.” 그녀는 재빨리 변명했다. “필요한 만큼만 얻어내면 돼. 내가 원하는 것은 줄리아, 당신뿐이야.” 줄리아, 그녀의 이름이었다. 빅터의 사랑에 목이 마른 여자였다. 줄리아는 아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빅터의 달콤한 속삭임에 흔들리는 그녀였다. “사랑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 남자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아들을 버린다고 한들- 그것도 괜찮은 인생이리라. 그러나 빅터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다. 아들을 버리고 둘이서 도망치자고 한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만약에 황금이 나오면, 그는 줄리아를 버리면 버렸지 티어리스를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티어리스의 눈에서 눈물을 짜내는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만이 오고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줄리아는 대답했다. “응, 그래 빅터. 그렇게 하자. 당신이 그렇게 원한다면.” 빅터는 활짝 웃었다. “죽은 체를 실감나게 잘 해야 해. 내가 지켜보겠어.” 줄리아는 두려웠다. 만약 티어리스가 진짜 울어버리면 낭패였다. ‘눈물 잔’ 안에서 황금으로 변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울지 않는다면 빅터를 잠시라도 붙잡을 수 있으리라. 줄리아는 아들을 믿었다. 그녀의 아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이니. 티어리스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쓴 상태로 잠든 척했다. 이불 밑으로 틈을 만들어, 그곳에 눈을 가까이 대고는 탁자 위에 놓인 물 컵을 바라보았다. 쥐약을 섞은 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물 컵만이 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다. 티어리스는 ‘눈물 잔’을 두 손에 꼭 쥐고 가슴에 안았다. 엄마는 집에 들어와서, 등잔에 불을 밝혔다. 케밥을 위해 준비한 반찬거리를 탁자위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목이 탔다. 오늘 밤, 아들 앞에서 갑자기 죽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거니와, 그 과정을 빅터가 찾아와 밖에서 지켜본다고 했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연기해서 빅터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갈증이 났다. 그녀는 탁자 위에 올려진 컵을 들어 한숨에 비워버렸다. 휴, 하고 한숨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물 냄새가 고약했다. 컵을 들어 코로 가져가는 그 때 목구멍에서부터 시작해, 배속까지 타들어가는 통증이 찾아왔다. 그녀는 손에 힘이 빠져 컵을 떨어뜨렸고, 다리의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통증은 지독했다. 목구멍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타들어갔다. 통증은 배속을 쥐여 짜는 것도 모자라 송곳으로 뚫고 갈퀴로 긁어내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목을 쥐어 잡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티어리스는 깜짝 놀라 이불을 걷어내고 뛰쳐나왔다. “엄마! 엄마!” 엄마의 몸은 활처럼 굽어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눈이 뒤집혀졌다. “엄마! 잘못했어요! 죽지마세요!” 줄리아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티어리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제야 깨닫고 너무도 슬퍼 -어, 어어- 하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샘이 터지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빅터는 줄리아가 제법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애야, 왜 우니?” 빅터가 물었다. “아저씨! 엄마가 죽었어요!” 티어리스는 엄마의 머리를 무릎에 올리고 엉엉 울었다. 눈물은 턱을 타고 흘러내려 줄리아의 뺨을 적시고 있었다. 빅터는 등불을 들고 집안을 한 바퀴 뱅 둘러보았다. 그는 ‘눈물 잔’을 찾고 있었다. “엄마! 눈 좀 떠보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빅터는 황금이 떨어져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서 마법의 잔을 찾아야만 했다. 침대의 이불을 걷어내자, ‘눈물 잔’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빅터는 그것을 주워 들고는 티어리스의 턱 밑에 받쳤다. 눈물이 잔 안에 떨어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눈물은 황금으로 변해 반짝반짝 빛을 뿜어냈다. 빅터의 눈이 동그래졌다. 바로 그 때였다. 줄리아가 기침과 함께 구역질을 했다. 티어리스의 무릎 위로 속의 것을 모두 토해내고 있었다. “엄마? 엄마!” 티어리스는 엄마가 다시 살아나서 기뻤다. 눈물이 뚝 그쳤다. “엄마! 눈 좀 떠보세요!” 줄리아는 계속 구역질을 했다. 몸을 일으키더니, 앉아서 구역질을 했다. 빅터는 줄리아의 허벅지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더 죽은 척 하라는 신호였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너, 뭘 잘못했다는 거냐?” 빅터가 물었다. “제가 쥐약을 탔어요. 그것을 엄마가 마셨고요.” “뭐?” 빅터는 이제야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에 들린 ‘눈물 잔’을 들여다보았다. ‘눈물 잔’ 안의 황금은 너무도 적은 양이었고, 하찮아보였다. 그는 더 많은 황금을 원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로부터의 완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왜 그런 못된 짓을 했니. 쥐약 따위로 사람은 잘 죽지 않아. 고통스러울 뿐이지.” 빅터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것은 살기였다. “사람을 죽이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그는 줄리아의 머리를 붙잡더니, ‘눈물 잔’으로 정수리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죽일 작정이었다. “우리 엄마 때리지 마요!” 티어리스가 깜짝 놀라, 몸을 날려 엄마의 머리를 온몸으로 보호했다. 빅터는 티어리스의 뒷덜미를 잡아 침대로 던져 버린 후, 다시 줄리아의 머리를 가격했다. 줄리아가 고개를 돌려 피하자, ‘눈물 잔’은 광대뼈를 가격하고 있었다. 광대뼈가 함몰되면서 솜뭉치를 때리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 개 같은 년! 지긋지긋한 년! 뒈져버려라!” 빅터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티어리스는 다시 달려들어 빅터의 손목에 매달렸다. “때리지 마세요! 때리지 마세요!” 티어리스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이 날렸다. ‘눈물 잔’ 안에 눈물이 떨어지자 황금이 생겨났다. “그래, 울어! 어서 울어!” 빅터는 ‘눈물 잔’을 티어리스의 턱 밑에 받치며 소리쳤다. “더 울어! 계속 울란 말이야!” 빅터는 티어리스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렸다. 그렇게 하면 황금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마음이 급했다. 쏟아내는 눈물의 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뺨을 때렸다. 티어리스는 계속 울었다. 피범벅이 된 엄마의 머리카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바보자식, 더 울란 말이야!” 빅터는 마음 같아서는 눈을 걸레 짜듯 짜내버리고 싶었다. 바로 그 때였다. 창밖에서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빅터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눈물 잔’ 안에 황금을 가득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창밖에서 들려온 소리는 그의 행동을 저지하고 말았다. 그는 찝찝했다. 그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던 것처럼 누군가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빅터는 다른 손으로 등불을 들어 창문을 비추었다. 바로 그 때, 잔이 넘치기 시작했다. 잔이 넘치며 황금이 넘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잔을 잡고 있는 빅터의 손가락이 금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티어리스는 계속 울었다. 빅터는 이제 두려웠다. 티어리스가 눈물을 멈추기를 원했다. “그, 그만! 울지 마라! 애야, 울지 마라!” 그러나 티어리스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잔에서 넘쳐 나온 황금은 빅터의 손가락에서부터 시작해 손목을 거쳐 어깨까지 황금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그만! 그만 울란 말이다!” 티어리스의 눈물은 급기야 폭포처럼 쏟아지고 말았다. 빅터는 온몸이 황금으로 변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입은 벌어진 채로, 울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티어리스는 울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아, 아들……. 아들 어디 있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어리스는 엄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번쩍 떴다. “엄마! 엄마!” 티어리스는 바닥을 기어, 엄마의 머리를 꼭 껴안고 다시 울었다. 엄마의 심장은 뛰고 있었고, 코는 숨을 쉬고 있었다. 엄마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것이다. “엄마,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티어리스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아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널 이용했고, 널 버리려고 했어……. 엄마를 용서해주렴.” 줄리아 그녀도 죽음에서 되살아 날 때,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혈육인 아들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티어리스와 줄리아는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을 거대한 황금이 비추고 있었다. 양치기소년은 거리를 달리며 사람들을 붙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비, 빅터가! 구둣가게주인 빅터가 황금으로 변했어요! 제, 제발 제 말을 믿어 주세요! ‘눈물 잔’은 진짜였어요! 티어리스의 집안에 황금이 가득하단 말이에요!” 양치기소년은 계속 소리쳤다. “너 이놈! 이 거짓말쟁이 오늘 한 번 죽어봐라!” 급기야 그에게 -늑대 사건부터 시작해서- 여러 번 속은 것이 분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기 시작했다. “으악! 진짜란 말이에요!” 양치기소년은 진실을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혹독한 매질뿐이었다. 양치기소년은 진실이라는 외줄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거리에는 발길질과 주먹질하는 사람들이 눈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fin 3, 성애정신병원 아트로포스와 위향이 서쪽해안도로를 따라 아랫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산속에 위치한 정신병원건물이 황금달빛에 하얀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야간에는 입원이나 면회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모니터를 통해, 정문을 지키는 경비가 말했다. “입원이나 면회하러 온 게 아니고, 도둑놈 잡으러 왔거든요?” “야간에는 입원이나 면회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경비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일 일찍 오자.” 위향이 말했다. 아트로포스는 정문 창살을 통해 안을 대충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달빛에 모습을 드러낸 정신병원은 악마의 소굴 같았다. 정문 기둥 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하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근데, 이 시간에 어디서 뭘 해?” “자야지.” “어디서?” “여관에서 자야지 어디서 자?” “여관? 에이, 불결하잖아. 너 혹시 전화기 있어?” “없는데?” “됐다. 가자.” 두 사람이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다. 위향은 밖을 기웃거렸고, 아트로포스가 방을 잡았다. “방 하나 주세요.” 여관주인은 졸린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트로포스의 아줌마패션에 한동안 시선을 고정시켰다. “침대 방으로 줄까요? 온돌방으로 줄까요? 참고로 침대는 물침대입니다.” 아트로포스는 물침대라는 말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물침대 방으로 주세요.” 위향은 뒤에서 꾸물거리고 있다가 주인에게 말했다. “저도 방 하나 주세요. 저는 온돌방이요.” “일행 아닌가요?” 주인이 물었다. “맞아요. 하지만 한방 쓸 사이는 아니에요.” 아트로포스가 대답했다. 여관주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침대방 말고는 없군요.” “네?” “방이 하나밖에 없다고요.” 여관주인은 위향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나, 잘하고 있지?). 위향은 깜짝 놀랐다.(아저씨, 왜 그러세요. 잘했어요.) “어라? 이 아저씨가? 방금 침대방으로 줄까요, 온돌방으로 줄까요? 그랬잖아요?” “있는 줄 알았는데, 없는 걸 어떻게 해요.” 아트로포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전화 좀 쓸게요.” 라고 말했다. 아트로포스는 전화를 걸었다. -굿서비스뚝딱!- 택배에 전화를 걸어 숙박용 컨테이너를 배달시킬 참이었다. “뭐야,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알았어요. 그걸로 주세요. 계산은 애가 할 거에요.” 여관주인은 그러면 그렇지, 튕기긴 뭘 튕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따라오시죠.” 여관주인은 위향에게 또 윙크를 날렸다.(잘해 봐.) 위향은 헛기침을 했다.(아저씨는 진짜! 왜 그랬어요. 고마워요.) 주인의 안내를 따라 3층 계단을 올라, 복도를 지나쳐 방에 들어섰다. “자, 편히 쉬세요.” 주인은 안내를 마치고 돌아섰다. 그 때 아트로포스가 주인을 불러 세웠다. “저기, 아저씨. 물어 볼 게 있거든요?” “뭐 말인가요?” “산 아래, 성애정신병원이라고 있잖아요.” “아, 네. 근데 왜요?” “거기, 정신병원 맞나요?” 주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되요.” “곤란할 것까지는 없죠. 제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절대로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겁니다. 그럼, 편히 쉬십쇼.” 아트로포스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주인이 돌아서자마자, “와, 물침대다! 가위바위보 할까?” 아트로포스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침대의 쿠션에 엉덩이를 퉁기며 말했다. ‘그렇게 좋아하면서 무슨 가위바위보야.’ 위향은 “좋아!” 라고 대답했다. 침대를 뺏고 싶은 심보가 발동했다. 계산도 했으니까! “자, 난 가위 낼 거다. 알았지?” 아트로포스는 손을 뒤통수로 감추며 말했다. 위향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내가 주먹을 내면, 보자기를 내려는 속셈이겠지? 그렇다면 난 가위를 내주마!’ “좋아, 가위바위보!” 아트포스는 진짜 가위를 냈고, 위향도 가위를 냈다. “호호호! 자, 다시 가위바위보!” ‘바보 아냐?’ 위향은 저절로 주먹을 냈다. 아트로포스는 잘도 보자기를 냈다. “야호! 이겼다. 침대는 내꺼다.” 이런 여우같은, 위향은 주먹이 민망했다. 아트로포스는 침대에 벌러덩 누우며 말했다. “잘 자둬. 내일 큰 싸움을 하게 될 것 같아.” “무슨 말이야?” “정신병원, 이상했어. 난 느낄 수 있어.” “이상하긴 하지…….” 사실 위향은 알고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위향이 듣기에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그냥 쳐들어 갈 거야?” 대답이 없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어, 자냐?” 소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대답대신 코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위향은 잠든 소녀의 얼굴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위향은 꿈속에서 스승의 죽음을 보았다. -위향아, 위향아. 사냥꾼들의 그물에 걸려, 사지가 꿰이고 전기톱으로 목이 절단되는 모습. 전기톱을 들고 히죽거리는 애꾸눈에 대머리사냥꾼. 위향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몸을 일으켜보니, 침대에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0분. “젠장!” 위향은 벌떡 일어났다. 혼자서 가면 어떡해! 칼을 챙기는 그 때 욕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위향은 아무생각 없이 욕실 문을 열었다. 뽀얀 습기 속에 여신이 있었다. 그리고 비명소리와 함께 비누가 날아와 눈을 때렸다. “노크할 줄 몰라?” “아, 미, 미안.” 위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누웠다. 엉덩이와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트로포스가 욕실에서 나오자 갓 핀 수선화 향기가 물씬 풍겼다. 위향은 그 냄새가 너무도 좋았다. “너 한번만 더 그러면 죽여 버린다.” “…….” “왜 대답이 없어?” “알았어.” 위향은 침대반대쪽으로 등을 돌리며 새우잠을 청했다. 아트로포스는 침대위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머리를 빗었다. 위향은 잠들 수가 없었다. 수선화향기가 코를 계속 자극했다. 다음날 아침, 성애정신병원. 정문을 지키는 경비의 목소리와 말투는 여전했다. “야간에는 입원이나 면회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지금이 야간이야?” “마네킹이잖아?” 경비가 마네킹으로 제작되어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아트로포스는 담을 훌쩍 뛰어 넘었다. 새벽의 고양이가 여전히 정문기둥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었다. 뒤따라 위향도 담을 넘었다. 병원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밤에 밖에서 보는 것과 환한 아침에 안에 들어와서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움직일 때마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가위가 없어서 어째?” “상관없어.” 아트로포스의 손짓에 문이 활짝 열렸다. 두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내부는 몇 년간 사람의 왕래가 없어 보였다.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이동침대와 휠체어가 넘어져 있었다. 간호실의 케비닛도 뒤집어져 주사기와 의료기구들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천장의 등도 깨지고 빠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마치,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 같았다. “누구 있어요?” 위향이 뒤에서 소리쳤다. “쉿! 조용해야지! 바보 아냐?” “왜?” “도둑놈이 도망가잖아!” “도둑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생체실험을 했다는 사실, 알아?” “생체실험?” “응, 사람과 동물의 머리를 바꾸는 그런 종류의 실험. 뭐 세포재생능력이 기적에 가까우니, 별 짓을 다 한 거지.”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건데? 그건 그렇고, 그런 못된 실험을 왜 했데?” “불멸의 비.” “불멸의 비?” “응, 그 비밀을 파헤쳐보려 한 거지. 내가 듣기론, 우리 인간의 뇌에 그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해. 불멸의 비를 맞고서, 잠자고 있던 뇌가 100퍼센트 풀가동 된 거니까.”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참 신기한 게, 불멸의 비는 우리 인간에게만 영향을 주고, 동물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거. 그 이유를 밝혀내려고 했을 거야.” 위향은 뒤집어진 캐비닛 안에서 뭐 쓸 만한 것을 찾으며 말했다. “그럼, 너 이것도 알고 있니?” 아트로포스가 말했다. 위향은 뒤돌아보았다. “뭐?” “불멸의 비 성분이 뭔지 알아?” “그건 모르겠는데?” 아트로포스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위향은 궁금했다. “성분이 뭔데?” “불멸의 비는 천재일까, 인재일까?” “무슨 말이야?”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죄일까? 아니면 하늘의 심판일까? 하는 말이야.” “거기까지는 모르겠거든? 알고 싶지도 않고?” 여기까지 떠들었을 때, 위향은 아트로포스의 옷과 부츠를 발견했다. 건너편병동 입원실베란다에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저기, 저기 봐.” “어라? 내 옷이 저기 있네? 내 가위도?” 두 사람은 재빨리 움직였다. 건너편병동으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뛰었다. 그러나 계속 뛰고 또 뛰어도 제자리였다. “사술이 걸려 있어.” “사술?” 위향이 물었다. 아트로포스는 주변을 어지럽히고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간이침대에서 휠체어, 캐비닛. 자질구레한 의료집기들까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배치해둔 것이었다. 아트로포스는 폴짝 뛰어, 거미처럼 천장에 달라붙었다. 위에서 자세히 내려다보니,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진법이야.” “진법?” “모두 치워. 자리를 이동시켜봐!” 위향은 재빨리 물건들을 정리했다. “어떻게, 이렇게?” “상관없어. 그냥 자리를 아무 곳이나 이동시켜!” 아트로포스는 천장에 달라붙어, 지시했다. 바로 그 때였다. 고양이가 천장을 거꾸로 걷고 있었다. 고양이는 하품을 했다. 아트로포스의 머리 옆으로 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자리를 틀고 앉았다. “뭐야.”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아트로포스는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있었다. 위향이 배위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물건들도 쏟아졌다. “야!” “아, 미안!” 아트로포스는 벌떡 일어났다. 위향의 목을 잡아채 가슴에 숨기고는, 손을 뻗어 염파로 물건들을 코앞에서 붙잡았다. 그대로 떨어져 내리면 깔려서 크게 다칠 뻔했다. “장난이 심한 데?” 아트로포스는 그곳을 빠져나와 건너편병동을 보았다. 옷과 가위는 여전히 베란다에 있었다. “가자!” 복도를 걷는 두 사람 옆으로 고양이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면사부(免死符, 불멸의 시대) 2010년 10월의 마지막 날…… 불멸의 비가 내렸다. 프롤로그 위향아, 잘 들어라. “네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자연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되는 길이란다. 자연이 되는 길은 노장(老莊)의 도(道)로 통하고, 인간이 되는 길은 공맹(孔孟)의 도로 통하겠지. 자, 어떤 길을 택할 것이냐? 자연이 되겠느냐, 인간이 되겠느냐? 우리 인간은 한 번에 두 가지 길을 갈수 없으니,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단다. 위향아, 넌 어떤 길을 택하겠느냐?” 소년은 녹음기를 눌러 껐다. “스승님, 전 인간의 길을 택하겠습니다. 노장이 말하는 무위자연이란, 구름위에서 꿈을 꾸는 바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합니다.” 소년은 다시 녹음기를 눌러 켰다. 테이프가 감기며, 스피커에서 걸쭉한 노인의 음성이 다시 흘러 나왔다. “인간의 길을 걷다보면, 인간사 정에 얽매여 욕망과 번뇌에 사로잡히는 것은 당연지사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길을 걷다보면,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멀리해야 하는 법이니 어느 쪽이든 손실은 있는 게지…….” 소년은 다시 녹음기를 눌러 껐다. “스승님, 걱정일랑 꼭 붙들어 매십쇼. 저는 흔들리지 않는 인위(人爲)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하기에 인간사 정에 흔들리는 것은 당연지사, 욕망과 번뇌에 괴로워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소년은 녹음기뒤편 영정에 큰 절을 하고 칼을 옆구리에 찼다. “스승님, 수련하고 오겠습니다.” 소년은 마당으로 나왔다. 소년의 집은 해변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에 위치해 있었다. 하합! 소년의 야무진 기합성과 함께 나무에 매달린 다섯 개의 목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 빨리, 좀 더 빨리.’ 소년은 염력으로 다섯 개의 목각을 조정하고 있었다. 꽤 속도가 붙었다. 다섯 개의 목각은 지그재그로 흔들렸다. 소년은 눈을 반짝였다. 발을 박참과 동시에 칼을 빼고 휘둘렀다. 단 일획으로 다섯 개의 목각이 잘라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소년은 착지와 함께 고개를 들어, 흔들거리는 목각을 눈으로 잡았다. ‘멈춰, 멈춰!’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소년의 염파는 미완성이었다. “휴, 젠장.” 소년은 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팔각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변을 가로지르는 바이크를 한 대 발견했다. 해변마을의 노인네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있었다. “저, 저 자식이!” 소년은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눈을 반짝 빛내며 칼을 고쳐 잡고, 공중으로 발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소년이 떠난, 영정사진 앞. 녹음기(박물관에서나 볼 법한)는 저절로 버튼이 눌러져 앞으로 빨리 감기가 되더니, 딸깍하며 테이프가 재생되고 있었다. “위향아, 공맹의 인간지도보다는 노장의 자연지도가 낫지 않겠느냐? 그것이 훨씬 쉬울 텐데…….” 1, 헌터킬러, 아트로포스 남명연 멀고도 먼, 아주 먼 미래.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세상. 서울에서 서쪽으로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어느 해변마을에 소동이 일어났다. 부아아앙, 오토바이굉음이 울려 퍼졌다. 노을이 물드는 해변에,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는 바이크 한 대! “으아, 노령사냥꾼이다!” 그물을 정리하던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도망쳤다. 어떤 할아버지는 손자를 내버려두고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치고 있었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반공호 안으로 들어가 각자의 무기를 쥐어들었다. 일반소총에서 기관총과 유탄발사기에 수류탄과 클레모아도 있었다. “한 놈인 것 같으니까,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물리칩시다!” 누군가가 말했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물리치기는커녕, 해변에서 홀로 떠도는 아이를 구하지도 못하고, 구경만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마을 노인들은 반공호의 사각 틈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냥꾼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오토바이가 서고, 사냥꾼이 내렸다. 검은색 부츠에 핫팬츠를 입었는데, 다리 빠진 것이 예술이었다. 붉은 노을이 해변을 물들였고, 사냥꾼의 몸매는 아름다운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와.” 누군가가 감탄했다. “이 염병할 영감아! 지금 감탄할 때여? 가서 애나 구해와!”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귀를 잡아 뜯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귀를 잡아 뜯기면서도 사냥꾼의 상체를 보았다. 잘록한 허리에 탱크브라만 착용한 가슴이 아주 적당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탱탱한 것이 풋풋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헬멧을 벗으니,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비단처럼 출렁거렸다. 방호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은, 허걱! 엄청난 미인이었다. 몸매는 쭉쭉 빵빵, 얼굴은 귀엽고, 순해보였다.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저런 외모로 노령사냥꾼이라니! “사냥꾼이 아닌 가봐.” “아니긴 뭐가 아니야!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가위 안 보여? 저걸로 목을 싹둑! 자르는 거라고!” “우리가 나가서 때려잡을 까?” 마을에는 젊은 남자들이 없었다. 모두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간 상황이었다. 마을에는 힘없는 아낙네들과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뿐이었다. “조용, 조용! 조용히 좀 해봐! 내가 처치해 주지.” 뚱뚱한 할머니가 수류탄 고리를 입에 물고, 유탄발사기를 장착해 문을 열고 나섰다. 꽃무늬 (몸빼)바지를 가슴까지 올려 입은 모습은 무척 용감했다. 여차하면 누르고(클레모어), 던지고(수류탄), 발사할(소총과 기관총) 기세였다. 그러나 해변은 평화로웠다. 사냥꾼은 아이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장아장, 곧 넘어질 것처럼 사냥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수평선으로 함몰해가는 거대한 태양이 두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사냥꾼은 아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눈높이를 맞추고는 핫팬츠허리춤에서 초콜릿을 꺼내어 주었다. 바로 그 때였다. “살인마!” 사냥꾼 뒤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아 들어왔다.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향해 칼을 내려치고 있었다. 태양 안에 세 사람이 담겼다. 아이는 초콜릿을 받지 못한 민망한 손을 계속 들고 있고, 두 실루엣은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했다. “뭐야!” 사냥꾼의 앙칼진 목소리가 해변에 울려 퍼졌다. 까앙, 하며 머리 위로 칼을 막았다. 사냥꾼의 무기는 재봉가위를 닮은 커다란 가위였다. “와!” 해변의 싸움을 지켜보는 반공호 안의 노인들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위향이다! 탁위향이야! 만세! 모두 나가 싸우자! 나가자!” 노인들은 소총과 기관총 그리고 수류탄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뚱보할머니를 밀쳐내고 등을 밟고 나가, 서로 앞 다투어 무기를 발포했다. 타타타타타타! 콰아앙! “이거나 먹어라! 이 짐승만도 못한 사냥꾼 놈아!” “죽어라 이년아!” 노인들은 폭발했다. 불멸의 비가 내린 이후로, 노령사냥꾼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아이를 생산만 하고, 죽지를 않으니 인류는 심각한 식량난과 물 부족으로 종말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인류위기해결국제회의에서는 면사부를 발행했다. 60세 이상의 노인은 무조건 노령자로 간주, 죽여도 법에 저촉을 받지 않으며 1000명 이상의 노령자를 사냥했을 시 사냥꾼에게는 면사부와 무릉도원에 갈 수 있는 티켓이 내려졌다. 즉, 영원히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네 놈들은 나이를 거꾸로 쳐 먹을 것 같으냐! 죽어라 이놈아!” 타타타타타타타! 콰아앙! 해변의 모래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에이, 진짜! 저 노인네들 개념 없기는! 아군과 적군을 몰라보면 어떡해!” 탁위향이라는 소년은 공중제비를 돌아 뒤로 물러났다. 몸놀림이 굉장히 빨랐다. “꺄아아아악! 우리 애가 있어요! 우리 애가 있는데, 그렇게 갈겨 대면 어떻게 해요!” 어떤 아주머니가 비명을 질러댔다. 총소리와 폭발음이 멈추고, 모래먼지가 가라앉았다. 조용해진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래만 움푹 패여 있었다. “어디 간 거야? 어디로 사라졌지?” 모두가 두리번거리며 찾는 그 때였다. “괜찮아?” 그들의 뒤에서 천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들은 뒤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우웨에엑! 사냥꾼이 뒤에 있었다. 아니, 어느 사이에! 아이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다시 총을 겨누었다. “애를 죽일 셈인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목소리였다. 눈빛도 달랐다. 완전 매서웠다. 사냥꾼은 노인들을 노려보며, -아이를 안은 채로- 노인들 앞으로 다가왔다. “오, 오지 마! 쏜다!” 노인들은 총구를 겨눈 채 달달달 떨었다. “애를 죽여서라도 살고 싶은가?” 사냥꾼의 질문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넌 질문할 자격이 없어! 살인마!” 탁위향이라는 소년이었다. 소년이 나타나자, 노인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살인마라…….” 사냥꾼은 아이를 내려놓고 목을 좌우로 젖혀 몸을 풀었다. 한판 붙을 기세였다. 소년도 칼을 양손으로 번갈아 쥐며 몸을 풀었다. “참나, 왜 죽고 싶어 난리브루스를 치는 거지? 알 수가 없네.” 사냥꾼은 소년의 주위를 돌며, 거리를 좁혀갔다. 등 뒤에 수직으로 꽂아둔 가위를 뽑아 올렸다. 채앵, 가위는 노을빛을 튕겨냈다. 양쪽으로 분리하자, 피비린내와 쇠비린내가 진동했다. 불멸의 비가 내렸다. 7일 동안 계속 퍼부었다. 비를 맞은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세포재생능력이 기적에 가까워졌다. 칼로 목을 한 번에 쳐내버리는 방법이 가장 깔끔하고 효과적이었다. “후회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냥꾼은 발을 박찼다. 까앙, 하며 가위와 칼이 부딪쳤고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콰가각, 가위의 이빨과 칼의 이빨이 부서져나가자, 그 사이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본시 사람을 죽인 칼이란, 피는 씻을 수 있어도, 냄새는 씻을 수 없다고 했다. “제법인데?” “건방떨지 마!” “귀여운데?” 사냥꾼은 소년의 얼굴에 입김을 불었다. 순간, 소년의 얼굴이 빨개졌다. “호호호!” “너, 날 너무 과소평가 했어!” “그래?” 소년의 눈이 발갛게 충혈 되는 순간이었다. 사냥꾼은 의아했다. 뭘 믿고 자신만만해 하는 것일까? 하는 순간 이마에 폭풍과도 같은 강력한 타격을 맞고 뒤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와! 꼴좋다! 노인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능력자?” 사냥꾼은 벌떡 일어났다. “흥, 맛이 어때? 죽이지?” 소년은 의기양양했다. 사냥꾼은 가위를 합친 뒤, 고쳐 잡으며 웃었다. “그래, 좋아. 해보자고.” “이미 끝났어. 다시 태어나면 사냥꾼 따위는 되지 말라고!” 속죄하라! 타핫! 외침과 함께 소년의 몸이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소년의 칼에 사냥꾼의 목이 달아나려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소녀를 보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녀였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가 흐트러져 더욱 아름다웠다. 소년은 움찔했다. 내려칠 수가 없었다. 순간, 소년은 소녀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보았다. 그와 동시에, 파하앙! 염력이 터져 나왔다. 소년의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염력이었다. 모래가 쫙 갈라졌고, 소년의 칼이 부러짐과 동시에, 소년의 몸은 뒤로 붕하고 날아가 해변의 모래에 거꾸로 쳐 박혔다. 우! 노인들은 일제히 야유를 퍼붓다가, 다시 총구를 세웠다. “이런, 이런. 이러니 노인네들은 일찍 죽어야 하는 거야. 여보세요들, 난 말이야. 그저 그렇고 그런 노령사냥꾼이 아니란 말이야.” “뭐, 뭐냐! 사냥꾼이 아니라면 정체를 밝혀라.” 소녀는 가위를 모래에 꽂고, 머리를 묶었다. 가위를 뽑으며, 소녀는 말했다. “내 정체? 난 당신들처럼 힘없는 노령자들을 사냥하지는 않아. 난 사냥꾼의 사냥꾼, 헌터킬러다.” “헌터킬러!” 헌터킬러는 국제회의에서 사냥꾼들의 무질서한 살인과 만행을 단속하기 위해 만들어낸 최정예요원들이었다. 사냥꾼 위에 사냥꾼. 일종의 먹이사슬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면사부가 주어지는 것은 헌터킬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같은 살인마잖아!” 소년은 모래밭에서 머리를 빼내고 소리쳤다. “그래도 난, 증이 있어. 증 보여줄까?” “증 같은 소리하고 있네. 살인마들이 무슨 증이야! “너 자꾸 살인마, 살인마 하는데……. 진짜 살인마들을 아직 안 만나봤나 봐? 근데, 너 몇 살이야? 쪼끄만 게 반말 씹고 있어? 앙?” 자신을 헌터킬러라고 밝힌 소녀는 가위를 들어 소년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 바로 그 때였다. 해변을 가로지르는 수십 대의 오퍼로드지프차들과 개조된 오토바이들이 등장했다. 광기어린함성과 자동차굉음이 파도소리를 밀어냈고, 기관총소리가 파란하늘에 난무했다. 노인들이 두려워하는 노령사냥꾼들이었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또 다시 울려 퍼졌다. 노인들은 서둘러 반공호로 이동했지만 이미 늦었다. “끼야호! 사냥이다! 사냥이야! 신나게 해보자고!” 오퍼로드지프차들은 해변에 세워둔 헌터킬러의 오토바이를 종이 짝처럼 뭉개버렸다. 도망치는 노인들을 향해 그물작살이 쏘아졌고, 촉수 끝에 매달린 낫처럼 생긴 무기는 노인들의 목을 한 방에 잘라버리고 원위치 되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망가진 것을 본 소녀는 가위를 꼭 쥐었다. “저놈들이 내 밥이야.” 소녀는 소년을 향해 윙크하며 말하고는,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가위를 분리해 양쪽으로 고쳐 잡았다. 휘둘러 날아오는 그물을 찢고, 촉수를 잘라버리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지프에 올라타 놈들의 머리를 한 칼에 베어버렸다. 총알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지만 과히, 바람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소녀는 총알세례를 받고 있는 지프차를 떠나 오토바이로 옮겨 타 운전자의 목을 따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모래바닥에 착지했다. 바로 그 때, 머리 위로 덮쳐오는 오토바이를 향해 손을 내뻗더니, 염파를 사용해 공중에 붙잡아 두었다. 소녀의 염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위전체를 염파로 감싸더니, 공중을 향해 휘둘렀다. 오토바이를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어 버리는 묘기대행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년, 탁위향은 멍한 눈으로 바라만 보았다. 소녀의 핫팬츠를, 소녀의 탱크브라를, 소녀의 개미 같은 허리를,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소녀의 비단 같은 머릿결을……. 폭력이 난무하던 해변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오토바이가 자빠져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고, 지프차가 뒤집어져 불타오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가 차 밑에서 기어 나와 벌벌 떨며 말했다. “너, 넌 도대체 누, 누구……. 끄아아아아악!” 놈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소녀의 가위에 손목이 싹둑 잘렸다. 손목은 모래바닥을 뒹굴며 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과 몸은 피투성이였다. “애꾸눈대머리사냥꾼이 네 놈 두목이지?” “그, 그렇다!” “가서, 전해라. 본부에서 헌터킬러를 보냈다고.” “허, 헌터킬러! 으악! 으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놈은 손목을 부여잡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고 있었다. 2, 오병이어(五餠二魚) -굿서비스뚝딱!- 택배트럭이 왔다. 택배트럭에서 내린 세 명의 직원들은 서둘러 해변을 정리했고, 죽은 자들의 신원을 파악했다. “요즘 성형, 장난 아닌데요. 15명 모두 127세에서 130세 이상의 노령자들입니다. 60세 이하가 한명이라도 나왔으면 첫 시작부터 마이너스실적을 올릴 뻔 했습니다. 아시죠? 실수 한 건당, 마이너스 10구라는 것.” “잘 알고 있지.” “근데, 성형한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뻔하지. 너무 설쳐대더라고. 아참, 바이크 여유분 있나?” “네, 걱정마십쇼. 한 대 두고 가겠습니다.” “고마워.” “고맙긴요. 놈들의 사체는 회수해가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시작부터 15구를 달성했군요. 앞으로 985구만 더 채우면 면사부와 무릉도원티켓을 획득하겠습니다. 아트로포스님! 수고하십쇼!” 택배직원들은 헌터킬러에게 경례하고는 죽은 자들의 시체를 정리해 사라졌다. “요즘 택배는 별거를 다 하네.” 탁위향은 멍한 표정으로 사라져가는 택배트럭을 보며 중얼거렸다. 소녀는 귀빈대우를 받았다. 마을회관에서 따뜻하게 데운 물에 목욕을 했다. 피에 더러워진 옷은 동네아낙들이 세탁해 잘 말려두었다. 빨랫줄에 걸린 핫팬츠를 몰래 뒤집어쓰고, 가운데 냄새를 맡아보던 어떤 영감님은 할머니에게 걸려 뒤지게 혼나고 있었다.(이 변태 같은 인간아, 노망들었으면 나가 뒈져라!) 소녀가 몸에 타월을 두르고 나왔을 때는 모두가 동물원원숭이 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해삼, 전복, 고등어 찜. 소고기미역국, 하얀 쌀밥. 시루떡, 전, 튀김, 사과, 배, 잡채, 약과 등등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 상황에서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난감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맛있게 드십쇼.”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소녀는 실컷 먹고 트림을 했다. 타월로 몸을 가린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영감님들은 진수성찬 앞에서 소녀의 몸매를 구경하며 행복해 했고(특히 다리 사이), 할머니들은 입을 씰룩거렸다. “저, 저기. 이 마을을 구해주신 은인이니까는, 성함이라도 알아야 쓰것는디…….” “맘멍어요(남명연)” “네? 맞먹어요? 맞먹으라고요? 아니, 이름 석 자가 어떻게 되시냐고…….” 소녀는 입안의 것을 꿀꺽 삼킨 다음 말했다. “남. 명. 연. 이라고요.” “아, 남명연…….” “국제회의에서는 아트로포스로 통해요.” 소녀, 헌터킬러의 이름은 남명연이었다. 조직에서 그녀에게 준 이름은 아트로포스. 인간운명의 실을 끊는 여신의 이름이기도 했다. “애, 넌 안 먹니?” 소녀는 소년을 향해 물었다. “위향아, 부르시잖냐. 어서 와봐라.” 노인들은 젊은 남녀가 만나는 것이 좋아보였다. 위향은 대꾸하지 않았다. 못 마땅한 표정이었다. “저기요, 어르신들. 제 부탁 좀 들어주실래요? 제가 찾는 사람이 있어서.” “뭐든지 분부만 내려주십쇼!” “혹시 최근에 애꾸눈에 대머리사냥꾼 보셨나요?” 소녀의 질문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놈을 왜 찾는데?” 위향이 대뜸 대답했다. “너, 그놈 알아?” “알지. 사냥꾼 중에서 악질로 유명하잖아. 이 땅의 사냥꾼들은 대부분 그놈 수하들이야.” “그래, 잘 알고 있네. 나 놈을 잡아야 하거든.” “왜?” “내 임무니까.” “임무?” “그래, 임무. 놈을 잡는 것이 내 임무야. 놈은 미치광이 살인마야. 아이건 어른이건 무조건 죽여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거든. 면사부 획득의 1000번째 재물은 바로 그놈의 목이 될 거야.” “이미, 늦었어.” “왜?” “한바탕 쓸고 지나갔단다.” 할아버지 한 분이 끼어들었다. “언제요?” “오년은 족히 넘었지 아마……. 늙으니 기억력이 떨어지는 구나. 기억나는 것은, 놈은 악마라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실내가 조용해졌다. 놈이 악마라는 것에 대해 누구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오토바이시동이 걸렸다. 소녀는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가 자신의 바이크를 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가슴팍에서 타월이 풀어지자 다시 고쳐 잡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빨래 줄에 내걸린 자신의 옷과 부츠 그리고 가위까지, 몽땅 사라졌다. 오토바이도 눈앞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도둑놈이 손을 흔들며……. “저놈 뭐야?” “진가.” “진가? 이름이 진가야?” “응.” “무슨 이름이 그래?” “성은 마씨야.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랬어.” “마, 진, 가? 이름이 뭐 이래.” “응, 신출귀몰한 놈이야. 고양이처럼 몸이 재빨라.” “도둑답구나?” “응.” 위향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혹시, 저놈 어디 사는지 알아?” 소녀의 질문에 위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알고 있어?” “응, 성애정신병원.” “성애…… 정신병원?” “응. 아랫마을인데, 여기서 자동차로 1시간 걸리지. 정신병원이 저 놈 집이야. 제집 들락거리듯이 들락거려.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미친놈이네.” “응, 미친놈에 도둑놈.” “잡으러 가야겠다.” “그 꼴로?” 탁위향은 은근히 소녀의 가슴골을 내려다보았다. “옷을 빌려야지.” 소녀는 할머니들의 옷(몸빼바지)을 얻어 입었다. 빼어난 미모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언밸런스해서 웃길 뿐이었다. “잘 있어. 잘들 계세요!” 소녀는 손을 흔들어 위향과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검정 고무신에 먹을 것을 잔뜩 챙긴 봇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자동차로 1시간 거리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야 20시간이 꼬박 걸린다. “위향아, 안 따라 가냐?” “제가 왜요?” “성애정신병원은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잖느냐. 그리고 네 힘의 비밀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노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싫어요.” 위향은 좋으면서도 역주행을 했다. 염파를 쓰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스승도 위향의 염파능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늙은이들이 천대받는 불멸의 시대이지만, 나이를 헛먹는 사람은 없단다. 소중한 인생의 경험 때문이지. 위향아, 일기일회라는 말이 있단다. 난 네가 저 아이를 따라갔으면 좋겠구나. 이 기회를 놓치면 넌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곳이 어때서요.” “네 마음은 아니지 않느냐. 네 가슴 속에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명과 정의가 있고, 인간애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부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거라. 우리는 비록 후회하고 있지만, 넌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나이만 먹고 천대받는 늙은이가 되었지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단다. 이유가 어쨌든 살인은 안 되는 것이다. 저 아이의 살인을 네가 막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인생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 하루를 살아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지.” 위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위향에게 조용히 선택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마당에는 위향만 남았다. 위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주먹을 꼭 쥐며 소리쳤다. “노인네들이 입은 살아가지고! 내가 없으면 어떻게 몸을 보존할 건데?” “우리가 살자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너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오래 살수록 더 오래 살고 싶다며!” “마감할 때도 되었지.” “웃기지마! 나 떠나면 후회할 걸?” “네가 남으면 더 꼴 보기 싫을 것이다.” “빌어먹을 노인네들, 나 이제 몰라! 어떻게 되든지 모른다고!” 위향은 발을 박차고 뛰었다. 뒤에서 노인들은 소년과 소녀의 무궁한 영광을 기원하고 있었다. 위향은 낡은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소녀헌터킬러 아트로포스의 뒤를 좇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소녀를 발견했다. “야, 타.” “똥차가지고 야 타라니.” “타기 싫으면 말고. 짠 바람 쐬어서 일찍 노화된 것뿐이야.” 위향은 소녀의 걸음과 나란히 차를 몰았다. 도로는 한적했다. “난 가끔씩 걷는 게 좋아. 이렇게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거 같거든.” 아트로포스(이하, 아트로포스라 칭하겠다)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말했다.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있었다. “생각을 하기는 해? 전혀, 생각 없는 사람 같은데.” “시비야?” “아니, 정말 그렇게 보여서.” “나도 알고 보면 꽤 복잡한 여자거든?” “뭐가 그렇게 복잡한데?” 아트로포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위향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트로포스는 조수석창문으로 머리를 숙이고는 위향을 노려보았다. “내가 살인마야?” “응.” 5초 동안 침묵의 새가 두 사람 사이를 날아다녔다. “하…… 알았어. 난 살인마야.” 아트로포스는 다시 걸었다. 위향은 차에서 내려 말했다. “염파는 어떻게 쓰는 거야?” “그것 때문에 따라온 거야?” “솔직히.” “네가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어. 난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아서 이렇게까지 된 거야. 나도 아직 멀었거든?” “그러지 말고 알려주라. 너처럼 사람 죽이는데 사용할 게 아니라 지키는 데 사용할 거니까.” 아트로포스는 획! 뒤돌아보았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잘 들어, 이 철부지야! 네가 노인을 한 명 지키는 1초의 순간에도,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고, 자식이 부모를 잡아먹고 있어. 먹을 것이 없어서! 알아? 그래도 지킬 거야?” “살인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어.” “너 참 답답하구나. 너 혹시 5병2어라는 말 아니?” “5병2어? 그게 뭔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게 어쨌다고?” “5병2어를 혼자서 먹으면 소승이고, 5천명이 나눠 먹으면 그게 바로 대승이야. 난 대승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5천명과 함께 나누어 먹고 있는 거라고!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웃기지마! 면사부와 무릉도원티켓을 얻으려고 살인하는 거잖아.” “애 정말 답답하네. 그럼, 다른 방법 있어? 함께 살아갈 다른 방법이 있냐고?” “아, 아직은 없어…….” “봐, 없잖아. 갈 사람은 가야하는 거야. 갈 사람만 가면 이 세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가야할 사람이 안 가고 버텨서 문제지.” “하, 하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강요할 순 없어!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는 문제잖아?” “스스로 선택해? 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어? 노인네들 죽고 싶다는 말 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오래 살면 살수록 더 살고 싶은 게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위향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차를 몰아 앞으로 달려 나가 버렸다. “자식이, 할 말 없으니까.” 아트로포스는 위향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그 누구도 죽음을 강요할 순 없다. 죽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위향 역시 차를 몰며 소녀의 말을 되새겼다. 가야할 사람은 가야하는 것, 그것은 자연의 순리이지 않겠는가. 위향은 스승님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되돌아가 녹음기를 가져오고 싶었다. 풍신퇴왕(風神腿王) 프롤로그 아르센 대륙에는 예부터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누구든, 풍신과 퇴왕을 얻으면 천하를 얻으리라.’ 1, 영지전쟁 10년, 검신 등선 7개월────. 아르센 대륙의 북쪽 땅, 평화롭고 풍요로운 영지 스트라이안의 영주 슬레이트 스트라이크 백작(북퇴왕)은 검신의 아내 나찰녀를 받아들였다. 나찰녀를 살리기 위한 검신의 희생으로 영지전쟁은 휴전상태가 되었고, 나찰녀는 검신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어느새 7개월, 검신이 떠난 7개월 동안 아이는 엄마배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찰녀는 북퇴왕 스트라이크 백작의 보살핌을 받으며(자객의 공격도 수차례 있었다),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7개월을 버티어냈다. 만삭의 그녀는 성안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에 운동부족으로 체중이 40킬로그램이나 불었다. 북퇴왕이 수하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나찰녀를 받아들인 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 만박자라 불리는 대륙의 유명한 점쟁이가 있었다. 만박자의 별점에 의하면 검신과 나찰녀 사이에서 아들이 탄생할 것인데, 그 아이가 바로 바람의 신, 풍신(風神)이라는 것이었다. 대륙이 믿었고, 북퇴왕 역시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아르센 대륙의 절대강자 중 일인으로 통하는 그의 명성에 항상 ‘북(北)’자가 따라다녀 못 마땅한 상태였다. “북퇴왕 아래, 풍신이라니! 참, 괴이한 운명이로다!” 북퇴왕, 그는 아들을 보지 못했다. 그는 은근히 자신의 아들이 퇴왕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 50에 딸만 아홉 줄줄 낳고, 아들을 포기하고 나니, 이제는 나찰녀를 통해서라도 풍신을 먼저 손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아르센 대륙에는 예부터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누구든, 풍신과 퇴왕을 얻으면 천하를 얻으리라.’ 나찰녀는 만삭의 몸이었다. 바로 검신의 씨앗, 풍신을 배안에 담고 있었다(만박자의 별점에 의하면). 북퇴왕, 그는 이제 풍신을 손에 얻게 될 것이리라. 남은 문제는 퇴왕을 어떻게 손에 넣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박자는 말했다. “천기를 한꺼번에 누설 할 수는 없는 법이옵나이다. 북에서 풍신이 태어나는 날, 남에서 퇴왕도 함께 태어날 것입니다.” 북퇴왕은 나찰녀가 기거하고 있는 방 주변을 서성거렸다. 응애, 소리만 터져 나오길 학수고대하며 손톱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곧 풍신을 얻게 될 것이고, 퇴왕까지 얻으면 천하를 얻으리라! 그러나 14시간 동안, 산모의 곡소리와 헛소리 그리고 욕 소리만 들려왔다. 산파가 밖으로 나왔다. “아직 멀었느냐?” 산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산모가 운동부족으로 순산을 못할 것 같습니다. 머리가 보이는데, 영주님의 머리 크기만 합니다.” “뭐라?” 북퇴왕의 머리는 보통사람보다 두 배는 컸다. 대두라고 놀림 받던 어린 시절, 그 때 귀족자제들을 혼내주기 위해 퇴법과 축법 그리고 각법을 배운 것이 지금의 북퇴왕의 전설을 만들었다. 북퇴왕 스트라이크 백작은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애 머리가 이렇게 크면, 산모의 거, 거시기는 어떻게 된단 말이오! 죽는 거 아니오?” 북퇴왕의 난처한 질문에 산파는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백작께선, 아기가 중요합니까? 산모가 중요합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아니, 지금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단 말이오?” 천하의 북퇴왕. 검신을 존경하고 흠모해왔다. 모두의 반대, 자객들의 공격, 이웃영지들의 전쟁협박을 이겨내고 나찰녀를 거두어 지켜냈다. “그렇습니다. 아이를 살린다면, 강제로 산모의 배를 갈라야할 것이니 출혈이 심해 위험하고, 산모를 살린다면, 아이의 머리를 눌러 터트려 죽여 부위별로 도막을 낸 뒤 빼낼 것입니다.” “이런!” 북퇴왕은 혀를 찼다. 아이냐, 산모냐. 천하냐, 의리냐. 북퇴왕은 어이가 없었다. 수하기사들을 뱅 둘러보았다. 이럴 때 충직한 녀석 하나라도 앞으로 나서서, 영주님! 앞일을 도모하소서! 라고 소리쳐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흠, 흠.” 모두가 조용했다. 북퇴왕은 헛기침만 연신 해댔다. “영주님, 시간이 없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산모도 죽고 아이도 죽습니다. 아기가 빠져나오질 못하고 제가 싼 똥을 먹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곧 질식사 하게 될 것입니다. 영주님께선 선택하셔야 합니다.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아이의 머리가 영주님 머리만 합니다. 그게 거기를 어떻게 빠져나오겠습니까?” “아니, 나도 잘 빠져나왔는데 제라고 못 빠져나올까? 머리가 얼마나 크기에…….” 북퇴왕은 뒷짐을 졌다. 한 손으로 창염의 불꽃(잿빛수염)을 쓰다듬으며 독백하듯 말했다.(천장을 보며 무게 잡고) “10년간의 전쟁으로 대륙은 황폐화 되었고, 남은 것은 검신의 애틋한 사랑뿐이로다! 어찌하여 검신께선 나찰녀라는 요괴를 가슴에 품으셔서, 영지간의 전쟁을 도화시켰고 끝내 스스로 죽음으로써 종식시켰단 말인가!” “어찌 하시겠습니까?” 산파는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분위기 잡고 있는 북퇴왕을 재촉했다. 북퇴왕은 산파의 재촉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분위기를 잡았다. 오른손 주먹을 위로 쥐어 올리고 소리쳤다. “풍신을 내게 주신 것은 하늘의 뜻이자 검신의 뜻이니, 내 그 뜻을 받아들이리라! 모두 내 말을 기억하라. 우리는 하늘의 뜻과 인연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산파는 어서, 아이를 살려라! 풍신을 살려내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이를 살려내야 한다!” 북퇴왕의 입에서 명이 떨어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방안에서 나찰녀의 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북퇴왕, 이 개자식아! 뭐가 어쩌고 어째?” 북퇴왕은 깜짝 놀랐다. 우웩! 나찰녀가 안에서 다 들어버렸다. “그래, 네놈의 그 시커먼 속셈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야, 이놈아! 이 개 같은 놈아!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이놈아? 나 절대로 못 죽는다! 두고 봐라 이놈아! 그동안 약속 때문에 안 잡아먹은 네놈 식솔들 다 씹어 삼켜 줄 테니까! 끄헉! 아이고, 아이고 나죽네! 하, 할멈, 할멈! 나, 나 좀 살려줘!” 끄어어억,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북퇴왕과 수하기사들은 나찰녀의 협박에 눈만 깜박거렸다. “아, 아니……. 형수님 그, 그게 아니고…….” “누가 네놈 형수야? 세피루스(검신)가 언제 네놈 형님 되었더냐? 이 개 같은 놈아? 내가 살아나기만 해봐라, 네놈 대가리부터 씹어 먹고, 빨대를 꽂아 뇌를 쪽쪽 빨아먹을 것이다!” 나찰녀의 욕지거리는 살벌했다. 그만큼 출산의 고통이 심각한 상태였다. 북퇴왕은 산파를 따라 들어갔다. 이렇게 된 이상, 뒷짐 지고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때였다. 꺼억! 하는 트림 비슷한, 아니 방귀 새는 요상한 소리와 함께, “응애!” 하고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북퇴왕의 눈이 동그래졌다. 산파의 작은 눈도 동그래졌다. 두 사람은 부리나케 달려 들어갔다. 거구가 되어버린 나찰녀의 두 다리 사이에서(양수가 터져버려 척척한 그곳에 아기집도 함께 빠져나와 있었다.) 몸집이 커다란 아이가 우렁차게 울부짖고 있었다. 산파는 즉시 이불로 나찰녀의 두 다리사이를 덮어주었고, 아기를 받았다. 양수를 닦고, 탯줄을 잘라 아기집과 분리했다. 산파는 아기를 씻기는 도중에 몇 번이고 아기를 바닥에 떨어트릴 뻔 했다. 두 다리가 너무나 굵고 무거워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아이가 풍신(바람의 신)? 가운데가 고추가 아니라 찢어졌는데?(사내가 아니라 계집아이잖아?)” 바람의 신(神)치고는 너무나 뚱뚱했다. 더군다나 여자였다. “아무래도 체중을 재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무겁습니다.” “그래, 어서 재봐라.” 산파는 아이를 저울에 매달았다. 혼자서는 힘들어 북퇴왕과 함께 매달았다. “352.75온스 입니다.(10킬로그램. 보통 신생아는 3~4킬로그램이다.)” “뜨아!” “우웩!” 놀란 것도 잠시, 북퇴왕은 열 받기 시작했다. 만박자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봐라, 네 이놈! 만박자를 당장 잡아와라! 반드시 산채로 잡아와야 한다! 내 친히 그놈의 목을 치리라!” 북퇴왕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감히, 나를 속여? 저게 어딜 봐서 풍신이냐. 뚱신이지. 나찰녀의 품에 안겨 젖을 쪽쪽 빠는 아이는 풍신은커녕 흡사 하얀 돼지로 보였다. 풍신이 태어난 같은 시각, 남쪽 척박한 땅 질리안. 제록스하머 백작은(남권왕) 군사들을 모아놓고 세작(첩자)의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질 무렵, 파발이 도착했다. 펼쳐보니, 나찰녀의 순산소식이었다. “좋다, 군사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성 안팎으로 영지전체를 샅샅이 뒤져, 오늘 태어난 아이를 찾아내라. 내 그 아이를 거둘 것이다!” 성문이 열렸고, 군사들이 출동했다. 핍박받는 질리안 백성들은 때 아닌 군사들의 횡포에 몸을 추슬러야만 했다. 일 계급 특진을 위해, 기사들은 어제, 그제 태어난 아이들도(심지어 일주일전에 태어난 아이도) 오늘 태어난 아이로 간주하며 막무가내로 잡아왔다. 백작이 거처하는 윈저성안은 산후조리원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신생아들의 울음소리는 새소리 같았다. 한 녀석이 울면 연쇄적으로 따라 울었다. 남권왕 제록스하머백작은 그의 수족과도 같은 흑마법사 모비딕으로 하여금 퇴왕을 골라내라 명했다. 모비딕은 머리가 두 개 달린 변종 양을 이끌고 다녔다. 소머리뼈 지팡이를 들고 다녔으며, 한손에는 말라붙은 양의 심장을 받쳐 들고 있었다. 말라붙은 양의 심장에는 못이 촘촘히 박혀있었다.(모비딕의 형은 비비딕으로 북퇴왕의 백마법사이다.) 못 박힌 양의 심장은 저주를 거는데 사용했다. 모비딕은 수탉을 잡아 목에서 뽑아낸 피에 염산을 섞은 다음 주문을 외웠다. 총 53명의 아이와 산모가 잡혀왔는데, 그 중에 먼저 태어난 아이들은 쉽게 식별이 되어 15명으로 줄었다. 모비딕은 섞은 피를 15명의 아이들 다리에 골고루 바르고, 공작의 깃털로 바람을 만들었다. “울지 않는 아이가 퇴왕입니다.” 모비딕이 남권왕 옆으로, 뒷걸음으로 물러나 말했다. “왜 그런고?” 남권왕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수탉의 피는 액운이며, 거기에 염산까지 섞었으니, 독이 되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퇴왕이라면 하늘의 도움을 받겠지요.” 이런, 제기랄. 그러다 진짜 퇴왕의 다리가 썩으면 어쩌려고! 남권왕은 모비딕이 하는 짓거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쯧쯧쯧.” 혀를 차는 그 때, 14명의 아이가 동시에 울었다. 그 중 한 아이가 깔깔깔 하고 웃었다. 퇴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왜소한 다리와 체격을 가진 아이였다. “저 아이입니다.” 모비딕은 소머리뼈로 아이를 가리켰다. “잘못 고른 것이 아니더냐? 멸치 같은 것이 어찌 퇴왕일까?” 남권왕은 모비딕을 향해 인상을 썼다. “이 아이가 맞습니다. 퇴왕의 기운을 타고 났습니다.” “퇴왕의 기운은 무슨, 얼어 죽을. 살타고 들어가고 있는 거 안보여?” 치직, 거리며 하얀 연기와 함께 살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퇴왕이 아니라 바보로구나!” 14명의 아이들은 울다가 혼절하기도 했다. 그 아이만 계속 깔깔거렸다. 잡혀온 산모들도 따라 울부짖고 있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남권왕은 친히 자신의 팔소매로 아이의 발을 닦아 주었다. 남권왕은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올리고서,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이 아이의 어미가 누구더냐? 앞으로 나와라.” 추레한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산후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가, 원체 먹지를 못해 깡마른 여인이었다. 퇴왕을 만들어낼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내가 거둘 테니 그리 알라. 모두 돌려보내라.” 여인은 바닥을 뻘뻘 기어 앞으로 나와 빌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 퇴왕이라니. 웬 횡재냐 싶었다.(이 참에 팔자 한 번 제대로 고쳐보자!) “젖이라도 먹이게 해주십시오!” 뒤돌아서던 남권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엄마젖을 먹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니라. 입성을 허락하는 바로 그 때였다. “영주님, 질리안 북경 한계선을 넘은 자들이 있다 하옵니다!” 기사 중 한 명이 말을 달려와 보고했다. “뭐라? 그게 어쨌단 말이냐?” 남권왕은 아이를 어깨에 들쳐 멘 상태로, 성문을 향해 말을 돌렸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경계초소의 병사의 말에 따르면, 신생아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주님께서 아이를 찾는 다는 말을 듣고 질리안을 탈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뭐야?” 남권왕은 아차! 싶었다. 퇴왕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북쪽 스트라이안으로 넘어가게 되면, 북퇴왕이 풍신과 퇴왕을 얻게 된다! “이런 젠장 할 퇴왕!”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남권왕은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아이를 던져버렸다. 그대로 말을 달리니, 뒤를 따르는 수하가 50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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